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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 15일 (일)

  6시 전에 잠을 뒤척이며 깼다. 6시 30분쯤에 일어나서 씯고, 아침을 먹고, 짐정리를 했다. 짐받이의 가방이 휠에 닿는것을 보완하기 위하여, 군화끈을 이용하였는데, 말로 설명하기가 좀 애매하다. 바람이 차가울것 같아 윈드자켓을 걸치고, 출발. 일단 도로를 따라 가다가 신천대로로 들어갔다.

 

  대구에는 금호강이 흐르고 있고, 신천(이름이 맞는지 모르겠음)과 만난다. 이 신천에는 신천대로(고가 도로)가 있고, 그 아래로는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다. 자전거 도로도 있다. 이 아래에 있는 도로에는 차가 다니면 안된다고 하는데, 꼭 개념없이 다니는 차들이 있지... 안타깝다.

  전에 수원을 통과해서 서울로 갔을때, 차가 너무 많이 정말 고생한적이 있다. 대구 역시 대도시이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을것이라 생각을 했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한 가지 거슬리는 부분이 있었다면, 대도시인 만큼 공기는 확실히 탁하다. 특별한 어려움 없이 대구 시내를 지나 국도를 탈수가 있었다. 대구가 시민의식이 잘 잡혀 있다고 한다. 그래서 경적을 울리는 차도 거의 없고, 서로 매너가 좋은 것이다. 대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예상치 못했던 여유가 느껴진다.

 

 

  4번국도를 타고 칠곡의 왜관읍으로 향하고 있다.

 

 

  대도시에서 벗어나 이젠 추수를 앞둔 농촌위에 놓인 국도를 달린다. 별 어려움 없이 왜관에 도착을 했다. 왜관 바로 앞에서 넓은 강을 만났다.
 

지도를 보니 낙동강이다. 낙동강이라고 하면 흔히 경남에서 부산으로 흐른다고 생각을 해오는데, 사실은 이곳 경북 왜관에도 낙동강이 흐르고 있다. 이곳 다리위에서 초코파이를 먹으며 휴식을 취했다.

  6.25 당시 이곳 왜관은 국군의 최후 방어선이었다고 한다. 그 당시 저 푸른 낙동강은 핏빛으로 물든, 엄청난 희생을 치러낸 격전의 현장이었다고 한다. 저 넓은 강이 피 빛이었다니, 얼마나 참혹한 현장이었을까... 나라를 지켜내겠다고 목숨을 건 참전용사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는 이렇게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고, 이렇게 여행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이제 김천으로 향한다. 달린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왜 그리 엉덩이가 아픈지... 사실 산마크로 안장으로 여행을 떠나는 건 처음이다. 엉덩이 아픈것 빼고는 아무렇지 않다. 오늘 목적지인 상주에 도착을 하면 샵에 가서 안장을 바꿀꺼라고 악을 쓰며 달렸다.

  그런데 왜그리 배가 고픈지... 중간에 계속 초코파이를 꺼내 먹었다. 길도 좁고, 공사하고 있어서 통행이 쉽지 않았지만, 중간에 코스모스 길도 있고, 무난하게 김천으로 향했다.

 

 

 

  김천으로 향하는 이정표가 보였고, 시내로 들어갔다. 김천을 비롯한 경북의 도시에서 전국체전이 펼쳐진다. 혹시나 그 팀들과 마주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혹시나 경기를 한다고 우리가 가야할 도로를 점령한다거나, 그들이 숙소를 먼저 예약해 우리가 잘곳이 없으면 황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점심시간을 넘겼기 때문에 빨리 점심을 먹어야 했다. 식당으로 가서 추어탕을 먹었다. 뭐.. 추어탕을 그렇게 좋아 하는 건 아니고, 최대한 속에 부담을 주지 않고, 힘을 내는데 도움을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식사 후 조각공원으로 갔다. 식당에서 가까웠기 때문에 그곳에 가서 구경도 하고, 소화도 시켰다.

 

 

 

나무와 잔디가 있고, 분수랑 물줄기와 함께 조각들이 어우러져 있었다. 조각공원이라고 특별히 볼거리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인근 주민들의 좋은 쉼터가 될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시 페달을 밟았다. 김천을 벋어날 무렵 김천을 상징하는 심벌이 우리를 환송해준다. 무엇을 의미하나 했더니, 태양, 산, 강물로 청정도시의 이미지를 상징한단다.

  이제 상주 시내를 향해 달리고 있다. 상주까지 40km정도 남았다.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엉덩이도 아팠고, 이상하게 어깨도 답답하고, 이래저래 힘들었다. 하지만, 내 머릿속엔 반드시 상주에 들어간다는 생각밖에 없다.

 

 

상주로 향하는 국도 옆으로 철도가 나있다. 한번 마주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는 길이랑 멀어졌다 가까워졌다를 반복하며 계속 나와 함께한다. 한 번도 이 철로위로 기차가 지나가진 않았지만, 대신 나의 그림자가 그 위에 걸쳐있다.

  늦은 오후에 접어들 무렵 상주시내에 도착했고, 제일먼저 자전거 박물관을 찾았다. 상주가 자전거의 도시라 안내가 자세히 잘 되어있을 줄 알았는데, 이정표 같은건 없었고, 지도랑 나의 감으로 찾아갔다. 지도에 박물관의 위치를 대충 표시를 해놨는데, 이정표가 없어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의심이 갔다. 상주에서 보은방향으로 5~6km정도 달리니 자전거 박물관이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어이가 없다. 표지판이 좀 미리미리 있으면 안되나? 이거 보러 상주까지 왔는데...

 

 

  박물관은 의외로 작았다. 관리도 허술한 듯하다. MTB 아팔란치아의 경우 바퀴가 빠져있었고, 뭔가 좀 난잡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자전거 박물관이라는데 의의를 두어야 한다.

  

자전거의 대선배 엄복도 선배님도 계셨고,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자전거들도 많았다.

 

 

 

초창기의 나무를 이용한 자전거를 비롯하여,  

 

가장 아름다운 자전거로 불리는 앞바퀴가 크고, 뒷바퀴가 작은 형태의 오디너리도 있었다.

  오디너리가 보급되면서 많은 애호가들이 생겨났고, 레이스 역시 인기였다. 음식도 달리면서 먹고, 밤을 거의 꼬박 새다시피 6일 동안을 달리는 그런 죽음의 레이스도 행해졌다. ‘뚜르 드 프랑스’도 참 힘든 경기이다. 3000~4000km를 3주에 완주한다. 하지만 ‘메디슨 스퀘어 가든 레이스’이라는 이름의 이 죽음의 경기는 비슷한 거리를 잠을 자지 않고, 6일 만에 끝낸다. 정말 무식한 경기인 것이다. ‘뚜르 드 프랑스’도 이런 방식으로 6일만에 진행을 하면 어떻게 될까라는 엉뚱한 상상도 해본다.

  박물관 구경을 마치고, 다시 상주시내로 되돌아 갔다.

 

  가는길에 자전거 전용 도로를 이용했다. 그런대로 만족스러웠다. 국도 바로 옆에 있었기 때문에, 국도를 대신해서 이용할수 있었다.

  숙소를 잡는데 실망스러운 부분이 하나 있었다. 자전거를 가지고 들어간다고 했더니, 지하실에 두라고 한다. 신문지 깔아 놓고, 깨끗하게 쓴다고 했는데, 절대 방에 가지고 가면 안 된다고, 다른 곳으로 가서 알아보라고 했다. 자전거의 도시에서 자전거를 이렇게 거부한다면, 어쩌자는 말인가... 아마 자전거를 타고 온 사람이 방을 엉망으로 썼나보다. 방안에서 기름때 튀겨가며 자전거 청소라도 한듯하다.

  하는 수 없이 다른 곳으로 갔더니, 그곳에서도 첨엔 망설이더니 깨끗이 쓴다고 하니까 허락을 해주었다. 이때까지 자전거 여행을 해오면서, 이렇게 자전거 때문에 다른 곳으로 가라는 말을 들은 것은 처음이다. 그것도 자전거의 도시라고 불리는 상주에서 그런 변(?)을 당한 것은 충격적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방을 잡았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저녁으로 설렁탕을 먹었고, PC방으로 갔다. 디카로 찍은 사진들을 CD로 옮기기 위해서 였다. 종업원에게 CD-RW가 있냐고 물어봤더니,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PC방에는 CD-RW를 달수 없다고 한다. 황당했다. 내가 즐겨 찍은 해상도와 화질로는 300장 정도를 찍을수 있는데, 어떻게 3박 4일동안 300장만 찍는단 말인가... 일단, 화질을 한단계 낮추기로 했다.

  마트에서 음료수를 사고, 방으로 돌아왔다. 일단 샤워를 했고, 코스를 점검해 보았다. 오늘은 여기까지...

 

DST 120.93km. Av 21.4km/h